콘클라베(라틴어: conclave)
콘클라베(라틴어: conclave)
콘클라베(라틴어: conclave)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제도로, 교황 선종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소집되어 진행되는 교황 선출 비밀 회의를 말합니다.
라틴어의 cum(함께),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하였으며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합니다.
선거인단인 추기경들이 외부와 차단된 비밀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선거를 하기 때문에 콘클라베라는 용어가 쓰이게 되었습니다.


콘클라베의 역사
가톨릭 교황직을 처음부터 콘클라베로 선출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직 동서 로마 제국이 모두 건재했던 3세기 이전에는 로마 주교의 선출이 다른 지방 주교들의 경우와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은 없었고 로마 교황도 처음엔 다른 지역의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내부의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에 의해 선출되었습니다.
물론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코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 사례에서 보듯 로마 지역 교회가 특별하다는 인식 자체는 있었지만 박해 받는 처지에 오늘날과 같은 콘클라베를 한다는 건 당연히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로마 주교는 좁게는 라틴 교회의 대표자이고, 넓게는 세계 주교단의 수장이라는, 로마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상이 기존의 2위이던 알렉산드리아를 추월하면서 수위권 분쟁의 조짐이 점차 일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반도를 수복하고 그에 따라 동로마 황제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로마의 주교 선출을 반드시 라벤나 총독부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로마 주교직의 선출은 점점 정치적인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769년에 행해진 시노드에서 정식으로 로마인 평신도에 의한 승인이 폐지되었지만, 862년의 로마 시노드에서는 귀족에 한해서만 그 권리를 부활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주교급 추기경들이 최초로 모여 누가 다음 교황 자리에 어울릴까 하는 문제를 토의하여 결정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급 추기경과 부제급 추기경도 동참하여 투표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국력 약화와 성상 파괴 위기를 겪고 비틀거리던 동로마가 라벤나 총독부 영토의 절반을 상실해 교황좌에 대한 압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이후에도 이 문제는 여전했으며, 9세기부터는 온갖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의해서 마구 갈아치워지는 지경이었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령을 발표하여 추기경으로 승격되려면 로마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교황 선출은 추기경단으로부터 선택되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교황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거권은 추기경만이 가진다'라는 원칙을 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콘클라베의 시초입니다.

1139년,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이나 추기경의 선출에서의 평신도와 하급 성직자의 동의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선거인단이 규정되기는 했으나 한 후보자가 얻어야 할 최소 득표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서 이중선출로 인한 대립교황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하였습니다.
1159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선출되었을 때는 후보자 간에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1179년에 개최된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최소득표수로 결정하며 해결되었습니다.
1059년부터 1179년까지 최소득표수에 대한 규정 미비로 인하여 12명의 대립교황이 난립했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필요한 득표 수를 3분의 2+1표로 고쳤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8년의 사도좌 공석과 교황 선출에 관한 교황령 《주님의 양떼 (Universi Dominici Gregis)》에서 시스템을 한층 더 고쳐 다시 필요 수를 3분의 2 이상 획득으로 확정하였습니다.

추기경단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확대되어, 1578년까지 인원수가 놀라운 증가 추세를 보였습니다.
이를 우려한 교황 식스토 5세는 추기경단의 인원수를 7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20세기까지 이 관례가 지켜지고 있었지만, 교황 요한 23세가 이 제한을 철폐했습니다.
후임 교황 바오로 6세도 교황 선거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여,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교황 선거에 참가할 수 없다는 제한을 걸어두었습니다.
바오로 6세는 투표권을 가지는 추기경단의 인원수를 120명으로 지정하였지만, 요한 바오로 2세 시대에는 한때 이 인원수를 넘은 적도 있었습니다.
2021년 1월 14일 현재 추기경수는 227명이며, 교황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은 128명입니다.
오늘날의 콘클라베
교황 선거에 관한 최신 규정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 헌장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입니다.
이 규정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습을 정리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만 수정한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가 2007년에 당선에 필요한 총 득표수를 개정했고, 선거인단 추기경이 모두 도착하면 15일을 넘기지 않고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조항을 퇴위 직전인 2013년에 추가했습니다.
이 헌장에서, 추기경단은 전처럼 시스티나 경당에서 감금되듯 밀집 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며 요한 바오로 2세 시절인 1990년대에 신축된 '산타 마르타의 집'이라고 하는 숙소에서 거주하면서 시스티나 경당에 출퇴근하듯 투표하러 가는 것으로 개정되었습니다.
대신 개인적으로 통행하다가 기밀이 유출될 문제를 방지하고자 모든 선거인단이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단체 버스를 타고 동시에 이동합니다.

교황이 선종하면 교황 궁무처장(Camerlengo)이라는 직위에 있는 추기경이 입회합니다.
궁무처장은 교황이 생전에 지명해 둔 추기경이며, 교황 부재 시에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교황이 선종했다고 판단되면, 궁무처장이 은망치로 교황의 이마를 살살 두드리며 세례명으로 세 차례 부르고 반응이 없다고 판단되면 죽음을 확인하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행해졌던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양 떼》에서는 단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성직자단의 대표, 교황의 비서, 사도단의 단장 등 80살 이하의 고위 성직자가 입회하여 확인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확인이 끝나면 궁무처장은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교황의 황금 반지를 교황의 손가락에서 빼내 추기경단 앞에서 반지에 공식인장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두 개의 깊은 흡집을 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지를 파괴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줄을 그어 지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biffatura'의 오역인 것 같다"라고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반지를 만들었던 세공사 클라우디오 프란치가 말했습니다.
어부의 반지에는 교황이 작성한 문서에 찍는 인감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선종이 발표되면 추기경단은 전원 집합하여 회합을 열어, 교황 선거에 관한 일정을 결정합니다.
이 회합에는 80세 이상의 추기경은 참가하지 않아도 좋지만, 원한다면 참가할 수도 있습니다.
교황 장례 미사는 사후 4일부터 6일간에 걸쳐 행해집니다.
그 후, 교황청 전체가 9일간의 애도기간을 갖습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9일을 의미하는 노베디아레스라고 한다. 교황 선거는 통상 교황 사후 15일 이후에 행해집니다.
모든 추기경이 다 모이지 않는 경우, 선거 개최일을 많게는 20일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선거 당일 날 아침, 추기경단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여 미사를 올립니다.
오후에는 바티칸 궁전 내의 파올리나 예배당에 집합하여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성가인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을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으로 이동합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추기경 좌석에는 교황령 <주님의 양 떼>와 <콘클라베 예식서>(Ordo Rituum Conclavis), 시간전례서(성무일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한 명씩 선서를 합니다.
선서 내용은, 만약 자신이 선출되었을 때는 성좌의 자유를 수호할 것, 선거의 비밀을 지킬 것, 투표에 대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이 서약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교황 선거에 참석한 우리 추기경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단체로서, 1996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주님의 양 떼》의 규정들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가운데 누가 하느님의 섭리로 교황에 선출되든 보편 교회의 사제로서 베드로의 교의(敎義)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과 교황의 영적·세속적 권리와 자유를 힘껏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특히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로마 교황 선출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한, 그리고 선출 장소에서 발생한 것에 관한, 직접적 내지는 간접적으로 투표 결과와 관련돼 있는 비밀을 엄수할 것을 충심을 다해 모든 사람과 함께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어떤 식으로든, 새 교황 선출 중이든 선출 후든, 선출된 교황의 분명한 허가가 없는 한 깨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어떤 계층이나 지위의 세속적 권위 그리고 단체나 개인이 교황 선출에 개입하려 하더라도 모든 간섭이나 반대 또는 다른 형태의 개입에 대해서도 결코 지지하거나 찬성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합니다.
추기경단 수석추기경의 서약문 낭독 후 다른 추기경들도 각각 계급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서합니다.
“그리고 나 (이름)는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
이어 추기경들은 한 사람씩 복음서에 손을 얹고 “하느님과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선서가 끝나면, 교황청 전례위원장은 "외부인 전원 퇴장"(Extra omnes)을 선언하고 추기경단 이외의 사람은 성당 밖으로 퇴장합니다.
유일하게 예외인 사람은 교황청 전례 위원장과 설교를 담당한 성직자입니다.
그는 남은 추기경단을 향해 오늘날 교회가 내포한 문제와 새로운 교황에게 요구되는 자질에 대해 설교합니다.
이것이 끝나면, 전례 위원장과 설교자도 퇴실하여 추기경단만이 남습니다.
수석추기경의 주도 아래 문답을 통해 선거법에 의문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의문이 없으면 선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 전에 투표와 개표를 진행할 계표인과 검표인도 추기경단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합니다.
선거는 수석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재하게 되어 있으나, 수석 추기경이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차석 추기경도 선거권이 없으면 일반적 서열에 따라 선거인 추기경 중 최고령 추기경이 주재합니다.
투표 개시에 늦었던 추기경은 해당 선거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선거 중에 병환 탓에 건강이 나빠지면 퇴실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회복하고 나서 선거에 돌아올 수 있지만, 병 이외의 이유로 퇴실했을 때는 이후의 선거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투표는 소정의 용지에 무기명으로 행해집니다.
투표용지 상단에는 'Eligo in Summum Pontificem'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있는데 이것은 '나는 이 사람을 최고의 교황으로 선택한다.(I elect as supreme pontiff.)'는 뜻입니다.

용지 하단에 선거인이 뽑고자 하는 이름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추기경들은 투표지에 기표한 뒤, 두 번 접은 투표지를 위로 치켜들고 서열 순으로 제대 앞으로 나아가 "나를 심판하실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나는 하느님 앞에서 당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선거합니다."라고 맹세한 뒤 투표지를 집표함에 넣습니다.

첫날 오후, 첫 번째 투표가 실시됩니다.
이 날 투표에서 결정되지 못하면 둘째 날 이후부터 1일당 오전 2회, 오후 2회로 합계 네 차례 투표가 실시됩니다.
3일째가 되어도 결정되지 않을 때는 하루 동안 투표를 중지하고 부제급 추기경의 최연장자에 의한 강화가 이뤄집니다.
그럼에도 7회차 투표로 넘어가면 다시 투표를 즉각 중단하고 이번에는 사제급 추기경이 권고합니다.
게다가 7회차 투표에서도 결정되지 않을 때도 같은 방법이 반복되어 이번에는 주교급 추기경의 연장자가 강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래도 결정이 되지 않으면 3명 이상인 후보자가 있을 경우 최소 득표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마지막엔 2인의 후보자에 투표를 하며 무조건 2/3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선거합니다.
단, 이 경우에는 최다득표자 2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규정)

투표가 완료되면 계표인들은 투표지에 기재된 이름을 확인하며 읽어주고, 선거인 전원이 득표 사항을 기록합니다.
계표가 끝나면 투표지와 득표기록을 다시 점검합니다.

투표지와 관련 기록 일체는 소각하며, 투표결과 보고서는 영구 봉인해 교황청 비밀문서고에 보관합니다.

투표가 끝난 후에는 표 집계, 표 수 검사, 투표용지의 소각이 차례대로 행해집니다.
투표에 의해 차기 교황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자 용지를 소각할 때 검은 연기가 나오도록 태웁니다.
만약 교황이 정해지면 하얀 연기를 내게 되어 있는데, 요한 바오로 2세를 선출한 1978년의 선거 이래, 검은색과 하얀색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도록 하얀 연기를 낼 때는 특수한 약품을 혼합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한 2005년의 교황 선거부터는, 교황이 결정된 경우 하얀 연기뿐만이 아니라, 성 베드로 대성전의 타종소리를 통해 군중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신임 교황은 선출 직후 ‘눈물의 방’으로 이름 붙여진 시스티나 성당 근처 조그만 방으로 안내되어 그 안에서 미리 준비한 세 가지 사이즈로 제작된 교황 전용 의복 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선택해 몸에 걸칩니다.
눈물의 방은 본래 제의실인데 선출됐을 때의 기분에 비유해서 붙은 별칭입니다.
그 다음 복장을 갖춰 입은 교황은 추기경단이 대기하고 있는 성당으로 돌아와 궁무처장으로부터 새로운 어부의 반지를 받습니다.

베드로 직무에 관한 복음서 구절을 읽고 짧은 기도를 바치고 나면 제단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의자에 앉아 추기경단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습니다.
추기경들은 축하의 인사와 함께 순명을 서약합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과 추기경단은 “테 데움”(Te Deum: 성 암브로시오의 사은 찬미가)을 함께 부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266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새롭게 추가된 사항이 있는데, 선출된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 중앙의 발코니로 나오기 전에 바오로 성당에 들러 성체 앞에서 잠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발코니로 나와 “로마와 전 세계에” 축복을 보내는 절차를 행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제급 추기경의 최연장자가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나와 하베무스 파팜, 즉 라틴어로 신임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발표합니다.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Habemus Papam!
Eminentissimum ac Reverendissimum Dominum,
Dominum [이름],
Sanctæ Romanæ Ecclesiæ Cardinalem [성],
qui sibi nomen imposuit [교황명].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극히 탁월하시고 공경하올 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본래 이름]이십니다.
이 분은 자신을 [교황명]로 명명하셨습니다.”)

20세기 콘클라베
1903년 7월 31일 ∼ 8월 4일 : 이탈리아 추기경 주세페 사르토 (비오 10세) 선출, 4일간 7차례 투표.
1914년 8월 31일 ∼ 9월 3일 : 이탈리아 추기경 지아코모 델라 시에사 (베네딕토 15세) 선출, 3일간 10차례 투표.
1922년 2월 2일 ∼ 2월 6일 : 이탈리아 추기경 아칠레 라티 (비오 11세) 선출, 5일간 14차례 투표.
1939년 3월 1일 ∼ 3월 2일 : 이탈리아 추기경 에우제니오 파셀리 (비오 12세) 선출, 이틀간 3차례 투표.
1958년 10월 25일 ∼ 10월 28일 : 이탈리아 추기경 안젤로 론칼리 (요한 23세) 선출, 4일간 11차례 투표.
1963년 6월 19일 ∼ 6월 21일 : 이탈리아 추기경 지오반니 바티사 몬티니 (바오로 6세) 선출, 3일간 6차례 투표.
1978년 8월 25일 ∼ 8월 26일 : 이탈리아 추기경 알비노 루치아노 (요한 바오로 1세) 선출, 이틀간 4차례 투표.
1978년 10월 14일 ∼ 10월 16일 : 폴란드 추기경 카롤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 선출, 3일간 8차례 투표.
2005년 4월 18일 ∼ 4월 19일 : 독일 추기경 요제프 라칭거 (베네딕토 16세) 선출, 이틀간 4차례 투표.
2013년 3월 12일 ~ 3월 13일 : 아르헨티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프란치스코) 선출, 이틀간 5차례 투표.
이상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