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사고

스티브 잡스(1955.2.24 ~ 2011.10.5)

1530blo 2024. 10. 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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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폴 잡스(Steven Paul Jobs : 1955.2.24 ~ 2011.10.5)

애플 Apple의 공동 창립자

애플 Apple의 전 CEO이자 공동 창립자 입니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 Apple를 공동 창업합니다.

애플 Apple의 제2대 제6대 의장이자 제6대 CEO를 역임했습니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라 평가 받았습니다.

Apple Ⅱ와 Machintosh의 성공을 통해 PC 시장을 개척했으며,

iPhone

스마트폰 모바일 시대

iPhone을 통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시대를 만드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디지털 라이프의 선구자

이를 통해 현재까지도 소비자 전자기기는

마우스와 터치스크린 방식의 인터페이스 입력 방식을 채택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 방식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독특한 마케팅 전력과

PT 기술

제품 개발에 일조하고, 동시에

Apple의 광고 전력과

프리젠테이션를 지휘하면서

독특한 마케팅 전략과 PT 기술로

신제품 발표회를 성공시키며 마케팅 업계에서는

프레젠터이자 광고인으로 유명합니다.

창의적인 생각과 행보로 현재의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2011년 10월 5일

56세 일기로 사망

2011년 10월 5일 췌장암으로 투병중 사망하였습니다.

인간 스티브 잡스 - 입양

1955년 2월 24일 출생

조앤 시블의 아들

스티브 잡스는 1995년 2월 24일 조앤 시블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잡스의 아버지인 시리아 출신의 압둘파타 존 잔달리의 집안 문제로 폴 잡스와 클래라 헤고피언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폴 잡스와 클래라 헤고피언의

아들로 입양

그의 양아버지는 그를 항상 격려해 주었습니다.

잡스는 잡스 부부를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날카롭게 반응했습니다.

인간 스티브 잡스 - 불교

일본 선불교 승려 오토가와 고분

1973년 리드 대학교 대학교 철학과 중퇴 후, 오리건 주 올인원팜이라는 사과 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 기거하던 일본 불교 승려인 오토가와 고분 치노를 만나 불교에 입문하게 됩니다.

1974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 회사인 아리타에 입사한 잡스는, 입사 직후 장기간 인도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더욱 깊게 공부하였습니다.

불교 입문 출가 고민

이후 잡스의 결혼식 주례도 오토가와 고분이 하였고, 이후 회사가 잘 되지 않자, 잡수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고자 고민하였으나, 오토가와 고분이 반대하였습니다.

이후 오토가와 고분이 사망한 2002년 까지 그를 정신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애플이란 회사명, 애플 제품의 매우 단순한 디자인, 사과농장, 불교는 매우 큰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 스티브 잡스 - 식습관

채식 및 금식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이 잡스의 채식주의 식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채식 습관이 개인적인 혜택 뿐만 아니라 지구적인 혜택을 주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잡수는 극단적인 식습관을 추구하였는데 예를 들어 일주일 이상을 단식하거나 로만 밀에서 나오던 시리얼 제품만 먹는 식이었습니다.

췌장암 투병중 건강 악화

2003년 말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 변형 휘플 수술을 통해 잡스의 췌장 일부분을 제거하였고,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해야 하지만, 10대 때부터 유지해온 채식 및 금식 습관을 버지리 않고 이는 건강을 더욱 해치게 됩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Apple 창업과 성공

고등학생 스티브 잡스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지다

고등학교 때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휴렛팩커드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게 됩니다.

휴렛팩커드 여름 인턴과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만남

197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휴렛팩커드에 여름 인턴으로 채용됩니다. 그곳에서, Apple를 같이 세운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게 됩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손수 컴퓨터 만들기 클럽' 가입

스티브 워즈니악이 운영하고 있던 '손수 컴퓨터 만들기 클럽'에 가입한 잡스는 완전히 컴퓨터에 빠져들었고, 그 후 워즈니악과 의기투합하여 컴퓨터 제작에 착수 합니다.

1976년 AppleⅠ롤 아웃

1976년 AppleⅠ이라는 PC 역사상에 길이 남을 기종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롤아웃합니다.

나무 케이스에 모니터조차 없는 투박한 플라스틱 기판과 실리콘칩 덩어리였으나, 쾌 큰 반향을 일으키며

꽤 많은 돈을 안겨줍니다.

제작 : 스티브 워즈니악

영업 : 스티브 잡스

 

당시 컴퓨터는 큰 회사나 대학, 정부 기관에서만 쓰는 게 일반적 이었고,

PC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로, 잡스가 한 가게에 영업을 통해 팔기로 구두계약을 하고 생산을 하였는데, AppleⅠ은 아래 사진과 같이 모니터도 뭐도 없이 요즘으로 치면

컴퓨터 본체만 있는 기기였습니다.

본체만 있는

AppleⅠ: 666.66달러

AppleⅠ의 가격은 666.66달러로 책정되었으며,

동네 상점을 통해 판매되었고,

오직 워즈니악만이 A/S 업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후속 모델 AppleⅡ, AppleⅡPlus 연속 성공

이후 AppleⅡ, AppleⅡPlus가 연속으로 성공하면서 부와 명성을 얻게 됩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Apple에서 쫓겨나다

코도모어 64의 도전과

잡스가 개입한 AppleⅢ 폭망

AppleⅡ는 코도모어 64의 도전을 받게 되고,

워즈니악이 만들지 않고 잡스의 개입이 심했던 AppleⅢ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GUI 관심

Lisa 프로젝트

Macintosh 프로젝트

AppleⅢ가 망하고 잡수는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Lisa 프로젝트, Macintosh 프로젝트를 동시에 시작합니다.

잡스는 Lisa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으나, 너무 화를 잘 내고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Lisa 팀에서 쫓겨나고, Macintosh 프로젝를 담당하게 됩니다.

이사회 소집

신망을 잃고 부진한 실적에

1985년 Apple에서 쫓겨남

이후 팀간의 불화와 연봉문제, 존 스컬리와의 갈등 등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고,

잡스는 존 스컬리를 쫓아내기 위해 이사회를 소집하여 투표를 선택하였는데,

부진한 실적과 여러 문제로 인한 신망을 잃고 1985년 Apple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NeXT

NeXT

워크스테이션 개발과 실패

Apple에서 쫓겨나면서 같이 나온 엔지니어들과 함께 NeXT라는 회사를 차리고 워크스테이션 개발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대학 연구소 등에 저가형 워크스테이션 판매를 시도하였지만 시장에서 참패하고 1993년 워크스테이션 생산을 완전 중단합니다.

당시 휴렛팩커드와 실리콘 그래픽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UNIX 워크스테이션들이 독식하고 있었던 시장에서, 벤처기업이나 다름없던 NeXT의 도전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운영체제 NeXTSTEP

다만, NeXT의 운영체제인 NeXTSTEP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훗날 Apple이 내놓은 모든 스마트 장치와 컴퓨터 운영체제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픽사

1986년 픽사 인수

1986년, 잡스는 루카스필름에서 CG를 담당하고 있던 픽사를 인수했는데, 당시에는 NeX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수하였습니다.

당시 잡스는 컴퓨터에 킬러 소프트로 탑재할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서 인수하였으나, 나중에 픽사가 500만달러의 적자를 내는 중에도, 픽사의 하드웨어 개발팀, 소프트웨어 개발팀, 창작팀에게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단편 3D 애니메이션 틴 토이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픽사는 틴 토이라는 단편 3D 애니메이션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지 잡스는 3D 애니메이션 산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이 생겨 자비를 들여가며 3D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원하였습니다.

디즈니와 계약

1995년 토이 스토리의 성공

잡스는 디즈니와 애니메이션 계약을 맺었는데, 디즈니의 작품, 캐릭터와 제작 통제권과 수입의 87.5%라는 불공평한 조건에도 계약하였고, 1995년 개봉한 토이 스토리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픽사 나스닥 상장

잡스는 개봉 일주일 후 픽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실패한 CEO에서 차세대 테크 산업의 리더로 복귀하는데 성공합니다.

2006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주식 맞교환으로 픽사 인수

2006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하였고, 그 덕에 스티브 잡스는 월트 디즈니 지분의 7%를 보유하게 되면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이사로서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Apple로 복귀

'썩은 사과' Apple

잡스도 없고 워즈니악과 없는 Apple은 계속된 부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었고,

Apple의 NeXT 인수

잡스 경영 고문

길 아멜리오는 결국 1996년 NeXT사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다시 경영 고문으로 불러들이는 결정하였습니다.

Apple 10억 달러 이상 적자

-> 3억 달러 이상 흑자

잡스는 경영권을 장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하며, 1997년 1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던 Apple을 경영권을 잡은지 1년만에 3억달러 흑자로 돌아서는 기적을 연출해 냅니다.

구조조정 단행 - 제품 축소

직원 3,000 해고

 

잡스는 Apple의 위기 상황에서 제품의 종류를 줄이고 꼭 필요한 사업을 제외한 기타 사업에서 손을 떼며 동시에 직원 3,00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한 영향 이었습니다.

픽사 두번째 작품

벅스 라이프 흥행

이후 Apple의 호전된 경영 성과에 더해 픽사의 두 번째 작품 벅스 라이프 까지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2000년

Apple CEO로 완전 복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마침내 2000년 잡스는 Apple CEO로 완전히 복귀하였습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iPod 시리즈

2001년

Apple iPod 출시

2001년 iPod를 출시했지만, 기성 MP3 시장에서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맥에서만 사용가능했기 때문입니다.

2003년 4월 28일

iTunes Store

iTunes for Windows

2003년 4월 28일 iTunes Store와 iTunes for Windows의 등장으로 일반 컴퓨터에서도 사용 가능해진 iPod4세대부터 제품이 잘 팔리기 시작했고, 2005년 iPod nano가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iPod 1억대 판매

iTunes Store에서

매년 1억 5천만 곡 MP3음원 판매

그 결고, iPod은 전세계에서 무려 1억 대나 넘는 물량을 팔았고, iTunes Store에서 매년 1억 5천만 곡 MP3음원 판매하고 있습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iPhone 공개 기조연설

전설의 프리젠테이션

2007년 1월 9일 이이폰을 공개하는 기조연설에서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기법이 유명합니다.

전설의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 - 세상을 바꾼 1세대 아이폰 2007년 공개 중요 부분 요약 [자체 한글자막] (youtube.com)

 

잡스가 iPhone의 세 가지 핵심 콘셉트(Revolutionary mobile phone, iPod with touch control, Breakthrough internet communicator)를 Apple 특유의 앱 모양의 아이콘들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휴대폰 + mp3 +인터넷

잡스는 이를 설명하는 말이 "These are not three seperate devices. These are one device! (이것들은 분리된 세 가지 기기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하나의 기기에요!)" 이었습니다.

iPhone이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휴대폰, mp3플레이어, 인터넷을 하나로 합친 편리하고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테크닉이었습니다.

잡스는 기존 "스마트폰"들의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기존의 플라스틱 버튼 입력 체계는 화면이 너무 작아 한눈에 표현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적다는 점과 응용 프로그램마다 유저 인터페이스 최적화가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쓰는 방법을 익히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그것들이 그닥 "스마트"하지 않다, 즉 기능이 미약하다는 점이었다.

각각에 대해 잡스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이는 결국 iPhone을 혁신적인 스마트폰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Multi-touch

유저 인터페이스

첫 번째는 Multi-touch 유저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전면에 플라스틱 버튼은 홈 버튼 하나만 두고 모두 없앤 뒤, 커다란 3.5인치짜리 터치 디스플레이 장치를 배치하여 소프트웨어로 키보드를 디스플레이 장치에 띄움으로서, 기존의 플라스틱 버튼 가능을 완전히 대체해 터치 인터페이스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겠지만 잡스는 이를 컴퓨터의 GUI를 휴대폰으로 가져오되 입력 장치를 마우스 대신 터치 패널과 손가락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핀치 투 줌 등 다양한 멀티 터치 제스처 개념을 도입해 작은 화면 환경의 한계를 극복했다.

앱 중심의 직관적

유저 인터페이스

두 번째는 앱 중심의 직관적인 유저 인터페이스입니다.

"메뉴 → 목록 → 항목" 방식에 익숙했던 기존의 휴대폰 유저 인터페이스들과는 다르게 iPhone은 바탕 화면에 계산기면 계산기 앱을, 시계면 시계 앱을 하나 하나 표시하는 방식으로 굉장히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Apple에서 1983년부터 Mac에서 쓰던 방식을 응용해 도입한 것이다.

OS X 도입

세 번째는 OS X을 iPhone에 도입한 것입니다.

기존의 스마트폰들에 비해 크게 차별화가 가능했습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iPhone 출시와 스마트폰 혁명

2007년 6월 29일

Apple iPhone 출시

출시와 함께 iPhone엄청나게 팔렸고, App Store가 등장한 이후 iPhone 3GS가 나오면서 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스마트폰 새로운 개념 정립

iPhone은 이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로 정립했고, iPhone의 방식을 표방한 Android의 등장으로 그 개념은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기업가 스티브 잡스 - iPad 출시

2010년 9.7인치 테블릿

iPad 출시

본격적으로 iPad용 앱이 활성화되면서 iPhone과는 다른 시장을 공략하며 iPhone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 어록

Older people sit down and ask, 'What is it?' but the boy asks, 'What can I do with it?'

늙은 사람은 앉아서 '이게 뭐야?'라고 묻는데, 소년은 '내가 이걸로 뭘할 수 있지?'라고 묻는다.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자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매일 최후처럼 살면, 언젠가 당신은 가장 옳은 사람이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 2005년 6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I'm as proud of what we don't do as I am of what we do.

우리가 이룬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도 자랑스럽습니다.

Think different.

다르게 생각하라.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굶주리고 엉뚱하게 생각하라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상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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