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사건사고

직지심체요절

728x90
반응형

직지심체요절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백운화상 경한(景閑)이 1372년에 초록한 불교 서적입니다.

제목을 풀이하면 백운이라는 고승(화상)이 간추린(초록) 부처님(불조)의 깨달음(직지심체)을 요약한 책(요절)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간단히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또는 직지(直指, Jikji)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372년(공민왕 21)에 백운화상 경한이 임제종 18대 법손 석옥청공(石屋淸珙) 화상(和尙)으로부터 받아 온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증보하여 상·하 2권으로 엮은 것입니다.

백운화상이 입적하고 3년 뒤인 1377년(우왕 3년)에 청주목(淸州牧)에 있었던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찍어 낸 것이 초인본(初印本)입니다.

이는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금속활자본은 현재 하권만이 전해지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고간본(古刊本)으로는 1378년 백운화상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鷲巖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 있습니다.

목판본은 1992년 4월 20일 보물 제113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상하권 1책이 각각 소장되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의 발견

1377년(우왕 3년), 고려 청주 흥덕사에서 고승이었던 백운 경한이 쓴 책을 금속활자로 뜬 것입니다.

이 경전은 학승들이 대교과(大敎科)를 마치고, 수의과(隨意科, 현재의 대학원 혹은 사회 학습)에서 공부하는 데 사용되는 학습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행방은 알 수가 없다가 구한말에 다시금 모습을 드로났습니다.

구한말 당시 주한프랑스공사이자 고서적 수집광이기도 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수집한 고물품들 중에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빅토르 콜랭 드의 이름은 한자로 갈림덕(葛林德)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직지의 첫 페이지에는 갈('葛')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습니다.

이후 1911년,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이 재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베베르가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습니다.

 

1900년 파리 엑스포 한국관에 소개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은 접어두더라도 오리엔트(근동) 지역에서 워낙 유물 유입이 빈번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알려졌기 때문에 직지심체요절까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당한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직지심체요절은 외규장각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외규장각과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로 가게 된 바에는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사실도 1972년, 박병선 박사에게서 밝혀졌습니다.

발견 당시 학계에서는 직지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말을 믿지 않고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박병선 박사는 혼자서 연구를 시작했고, 한국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어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임을 입증해냈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지 및 외규장각 의궤를 포함한 고서적들을 반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약속한 것은 사실이며, 실제로 의궤는 반환받았지만, 직지는 반환받는 데 실패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주도한 직지 반환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반출 경위가 약탈이 아닌 구입이었기에 명분도 부족합니다.

직지심체요절의 형태와 내용

직지심체요절은 고려의 승려 백운경안 화상이 중국에서 가져온 요절을 재구성하여 엮은 책으로, 여러 선종 조사들의 어록과 게송이 주된 내용입니다. 때문에 영어로는 'anthology'로 번역됐습니다.

과거 7불(佛) 7장, 서천(西天)의 조사(祖師) 27장, 중국의 조사 138장(총 172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권은 중국의 조사 중 1명인 대주 혜해(大珠慧海)부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무심선(無心禪)'이라는 특유의 선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무심무념으로 있으면서, 사람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깨달음(불성)이 자연스럽게 깨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백운경한은 현대 한국 불교에서 주력으로 삼는 의심 기반의 간화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무(無)’·‘만법귀일(萬法歸一)’·‘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등의 화두를 유용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화두마저도 버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나라 시대의 선풍을 되돌리기 위했던 백운의 노력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직지는 각 상권, 하권의 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프랑스에 있는 원본은 하권에 해당하며, 상권은 한때 현상금까지 내걸고 찾았지만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 이는 최초본의 상권 책 실물이 실종되었다는 뜻으로, '직지'라는 책의 텍스트 자체는 인쇄물의 특성상 오늘날에도 잘 남아 있습니다.

후에 간행된 목판본 직지는 완본이 제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주도 아래에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금속활자본 직지 하권의 글자체와 판형을 본떠서 2015년 상권 내용의 디지털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후에 실물활자를 전통방식 그대로 다시 만들어 상권을 복원할 계획입니다.

인쇄 상태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그다지 좋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직지를 찍어낸 활자는 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글자획의 굵기와 가늘기가 일정하지 않고, 어떤 글자는 기울어져 있고, 각 열이 곧지 못하고, 삐뚤빼뚤하고, 어떤 글자는 희미한 데다가, 획수의 일부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으며, 어떤 데는 윗열의 글자와 아랫열의 글자의 획이 맞물려 있는 등 조잡한 오류가 많습니다.

이는 관청에서 제대로 된 거푸집을 사용해서 주조한 게 아니라, 민간 사찰에서 밀랍을 이용해 주조했기 때문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의 의의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2010년대에 발견된 활자 증도가자가 직지보다 138년 앞선 1239년의 유물로 더 앞선 시대의 금속활자 인쇄의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2015년은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검사 결과로 증도가자는 위작으로 밝혀졌습니다.

또다른 세계 최고(最古) 타이틀로 알려진 문화재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도 헷갈리기도 하나 이것은 금속으로 만든 금속활자가 아닌, 나무로 만든 활자로 인쇄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목활자 기술이 금속활자보다 더 먼저 출현하기 마련이므로 시대는 그 쪽이 직지보다 500여 년 앞섰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본은 1372년 제작이 시작되어 1377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더 앞섰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직지 전인 1134년 인종 시기의 '고금상정예문(상정고금예문)', 1239년(고종 26년) 고종 시기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같은 금속활자 인쇄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소실되어 현대에 전해지지 않기에 인류에게 남아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이 직지입니다.

당시 고려의 발달했던 인쇄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후대에 목판으로 재간행된 목판본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보물 제758-2호)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판명되어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15년 진위논란이 일었던 증도가자는 '활자'고, 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적어도 과거에는 실제로 존재했을 그 금속활자로 인쇄한 '문서'이므로 증도가자 유물의 진위 논란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이 문서는 일단 최소한 가짜는 아니고 이미 심사를 거쳐 대한민국의 보물 75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기존에는 목판본으로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결론날 경우는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는 당대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한계로 유럽과는 달리 폭발적인 사회 변혁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직지심체요절과 관련된 이야기

앞서 직지를 펴낸 것으로 언급한 흥덕사는 오늘날에는 폐사되었습니다.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흥덕사지로서, 옆에 고인쇄박물관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에 가면 '직지'라는 글자가 시내 이곳저곳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버스정류장이나 전봇대마다 'JIKJI'를 써놨습니다.

구 이름 중 하나도 직지를 만든 흥덕사에서 이름을 따 흥덕구이고, 흥덕사지 부근 청주시 주요도로 이름도 직지대로입니다.

가로수길 타고 가경동으로 들어오면 '직지의 고장 청주'라는 비석이 있으며 청주IC에도 광고판에 같은 내용이 써져 있습니다.

청주농협에선 직지빵도 판매합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한국 고서적 중에는 직지심체요절보다 약간 먼저 제작된 책도 있습니다.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이라는 책으로 직지심체요절보다 약 7년 앞선 137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책은 목판본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고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진흥하고자 '유네스코 직지상'(UNESCO/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이 2004년 제정되었습니다.

2005년부터 2년마다 세계기록유산 보존·활용에 공헌한 개인에게/단체에 시상하며, 상금과 비용은 청주시에서 부담합니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직지심체요절' 이전의 금속활자본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수많은 유물들이 방화되거나 소실된 탓에 고려보다 더 빨리 금속활자를 제작했다는 증거를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1103년은 발행된 '불설관무량수불경'(佛說觀無量壽佛經)을 금속활자본으로 주장했으나 금속활자는 아니라 찰흙활자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 1341∼1345년 사이에 인쇄된 어시책(御試策)이 금속활자본이라 주장했으나 일본 정가당(靜嘉堂) 문고에 소장된 어시책의 원본을 확인한 결과는 1341년은 편찬된 목판본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직지)의 역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동시에 또한, 이를 계기로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직지의 가치를 기려 9월 4일을 직지의 날로 제정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글로벌 청원도 제기했습니다.

이상끝

반응형

'오늘의 사건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탕구협정  (0) 2025.05.31
잔 다르크 Jeanne d'Arc  (0) 2025.05.30
FOMC 회의록 공개  (0) 2025.05.29
신축민란 이재수의 난  (1) 2025.05.28
인디인 이주 Indian Removal  (0)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