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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사고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영어: Taiji Boys 또는 영어: Seotaiji and Boys)은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이다.

보컬, 작사·작곡,프로듀싱,제작의 서태지와 코러스 및 백보컬과 안무를 맡은 이주노, 양현석 세 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992년 1집 《Seotaiji and Boys》로 데뷔하였으며 4집 《Seotaiji and Boys IV》를 끝으로 해체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 이주노 양현석

1집 《Seotaiji and Boys》로 데뷔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

시나위의 해체 이후 서태지는 당시 대한민국에 막 도입되기 시작한 미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때의 미디 작업으로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등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 수록될 곡들의 일부가 만들어집니다.

1집 Seotaiji and Boys 1992년 3월 23일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새로운 음악 활동을 모색하던 서태지는 1991년 9월에 양현석, 이주노를 만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1992년 3월 23일에 1집 《Seotaiji and Boys》를 발표합니다.

주요곡은 난 알아요와 환상속의 그대 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는 1992년 3월 14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였습니다.

양복 입고 춤을 췄네요^^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 일명 '신호등 무대'로 명명) - 당시 방송에서 복장, 두발 등 여러가지를 단속하고 규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서태지 데뷔무대_Debut Stage_MBC토요일토요일은즐거워291회_1992.3.14_SeotaijiArchive

 

난 알아요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가 알 수가 있어요

사랑을 한다는 말을 못 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 버렸어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어

난 정말 그대 그대만을 좋아했어

나에게 이런 슬픔 안겨 주는 그대여

제발 이별만은 말하지 말아요

나에겐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잖아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를 정말 떠나가나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Please, Stop!)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면 Yo

그대 떠나는 모습을 뒤로하고

마지막 키스에 슬픈 마음

정말 떠나는가

사랑을 하고 싶어 너의 모든 향기

내 몸속에 젖어 있는 너의 많은 숨결

그 미소 그 눈물 그 알 수 없는 마음에 마음

그리곤 또 마음에 마음

그 어렵다는 편지는 쓰지 않아도 돼

너의 진실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요

아직도 마음속엔 내가 있나요

나는 그대의 영원한

난 정말 그대 그대만을 좋아했어

나에게 이런 슬픔 안겨 주는 그대여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를 정말 떠나가나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를 정말 떠나가나요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1992] 서태지와 아이들 - 환상 속의 그대

 

환상속의 그대

결코 시간이 멈추어 질 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

아무도 그대에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 둘 셋 LET'S GO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될 거라고 큰소리로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은 Yo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고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Farewell To My Love

Take Away Your Arrow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1집 《Seotaiji and Boys》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1992년 4월 11일, MBC의 특종 TV 연예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심사위원들은 노래를 듣고 7.8점이라는 역대 가장 낮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1992년 그해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서울가요대상 최고 인기상,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 골든 디스크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과 신인 가수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등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고 《Seotaiji and Boys》는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량인 18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1992년 음악 관련 모든 상 수상

방송 3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 모두 석권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 골든 디스크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과 신인 가수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

데뷔 음반 최대 판매량 180만장 판매

현재 K-POP 세계의 직접적인 시초가 된 앨범이자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파급력이 강했던 앨범 중 하나입니다.

현재 K-POP 세계의

직접적인 시초가 된 앨범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파급력이 강했던 앨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대성공 이후로 대한민국 가요계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바뀌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먼저 가요계 장르는 트로트와 발라드의 양강 구도에서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바뀌었고, 가요계 소비층은 20대 이상, 특히나 40대 이상 중장년층 중심에서 10대들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무대의상도 컨셉상 입은 의상을 제외하면 정장이 상당수였으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캐쥬얼한 패션, 책가방을 들고 나오거나 캡모자도 많이 착용하는 등 상당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활동 중단과 컴백도 이때부터 보편화됐습니다.

가요계 장르 : 트로트 발라드 -> 댄스음악

가요계 소비층 : 40대 이상 중장년층 -> 10대

가요계 의상 : 정장 -> 캐주얼한 패션등 상당한 변화

활동중단과 컴백 보편화

신승훈이 1집부터 2집까지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장기집권할 듯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그 인기에 도전이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신승훈은 1992년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하지만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선 1집을 낸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상을 수상하는 대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승훈 1992년 KBS 가요대상 수상

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 MBC 10대 가수 수상

대중 소비방식이 빠르게 변화 시작

그 변화가 뜻하는 바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기점으로 한 가수가 최고인기를 장기집권 하는 사례가 없어질 정도로 대중들 소비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60년대에 이미자가, 70년대에 남진, 나훈아, 80년대에 조용필이 3년 이상 그것도 3년 연속 원탑으로 장기집권 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현재까지 장기 집권한 사례는 신승훈, 김건모, BIGBANG, 조성모, 방탄소년단밖에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무대 중심으로 한국 가요계가 바뀌고 K-POP 시장으로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의 대표적인 댄스가수는 소방차, 박남정과 김완선이었습니다.

상당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이들과는 또 다르게 이지연이나 강수지 등도 일본 아이돌처럼 살랑살랑 흔드는 정도의 무대는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은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선, 양현석, 이주노는 1980년대부터 B-Boy의 시조새격 인물로 방송에서 수준 높은 포인트 안무를 선보여 온 바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영상을 보면 이주노는 이미 박철우 (후에 R.ef로 가수데뷔)와 1989년부터 완성된 컨셉을 갖춘 안무를 방송무대에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곡 안에서의 백댄서 정도의 위치만 부여받았을 뿐이지, 제대로 된 댄스 브레이크 구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춤꾼이었던 박남정, 현진영의 1991년까지의 무대를 보더라도, 댄서들이 있는 경우에도 댄스 브레이크는 없고, 안무도 율동 수준으로 댄스 스텝을 밟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서태지는 이들의 댄스실력을 전면으로 내세우기 위해 군무 구간과 댄스 브레이크 구간을 곡 안에 별도로 마련하는 한편, 당시 한국가요에서 도입 태동기에 있었던 샘플링 기법을 활용해서 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난 알아요>의 곡 27초부터 시작되는 첫 간주구간은 샘플링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사례로, 스트링 세션을 샘플링하여 마치 기타로 스트로크를 치듯이 휘몰아치는 간주를 만들어 1991년까지의 기존 가요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사운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즉 기존의 곡은 스트로크 연주가 가능한 기타로 연주했을 간주 부분을 새로운 기법인 샘플링을 통해 스트링샘플을 기타를 치듯이 조합해서, 기존에는 없던 강렬한 사운드가 나왔고, 이 부분에 포인트 안무인 회오리춤을 집어넣어 선보임으로써 곡에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지금이야 댄스곡 안에 다양한 단발성 효과음을 따다가 이리 저리 변조해서 흥을 돋우고 트랙에 버무리거나, 신디사이저 음으로 악기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운드를 만드는 작업이 상식 중의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이와 같은 시도 자체가 드물었고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때문에 그 필요성을 알고 있더라도 이처럼 곡 전반에 샘플링을 활용해 써내는 곡은 드물었습니다.

여기에 서태지는 당대 밀리 바닐리를 통해 빌보드에서 유행하던 랩스타일인 '쿨랩'을 국내 가요 가사에 도입하여 비록 각운은 분명하지 않지만 랩 플로우는 갖춘 초기 형태의 랩 구간을 선보였고, 양현석의 제안으로 멜로디 부분을 추가하여 곡을 완성하였습니다.

이어 곡이 인기를 끈 이후에는 스타일링에도 공을 들여 당대의 패셔니스타로 당시 청년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비로소 안무와 곡, 스타일링이 한데 어우러지는 K-pop의 형태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는 그룹 내에서 작곡/편곡/안무구성/스타일링이 자체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비로소 시도해볼 수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한 가지 정도만 잘 해도 주목받는 신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처음부터 이와 같은 완성형 무대를 선보인 것입니다.

듣는 음악에서

보고 듣는 무대 중심으로

안무와 곡, 스타일링이 어루러진 K-pop 형태 완성

난 알아요 무대로 돌아가서 보면 의상컨셉만 비슷하게 잡은 다른 의상을 입은 3명의 멤버가 귀를 잡아끄는 충격적인 스크래치 힙합 사운드와 함께 군무로 시작하고, 서태지가 랩을 꽂은 후 메탈 사운드와 함께 댄스 멤버의 댄스브레이크, 다시 후렴에서 서태지의 사랑노래, 곧바로 양현석의 랩과 댄스, 다시 포인트 안무가 들어간 군무, 그리고 3명의 랩과 댄스, 다시 메탈 사운드와 함께 댄스 멤버의 댄스 브레이크, 그리고 후렴에서 서태지의 사랑노래로 이어지는 꽉찬 구성은 이전의 가수들의 무대와는 그야말로 별세계의 모습입니다.

이런 특징은 특히 SM이 철저히 연구해서 다른 가수들에게도 적용시키던 것이 H.O.T.에서 폭발하고 또 그것을 다른 소속사들이 다 따라해 지금까지 한국 K-POP 시장의 핵심코드로 자리잡게 되는데, 핵심적인 요소는 이미 이 서태지 1집 무대에 거의 다 들어가 있습니다.

1세대 아이돌 이전의 가수들도 이 앨범 이후 달라진 판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가수들은 급격하게 사라진 반면 서태지의 방법론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서 적용할 수 있던 가수들은 크게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서태지 이후 가요계가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전에도 댄스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인기가 약한 장르도 아니었습니다.

서태지 이후의 한국 가요계가 서태지의 방법론을 따르는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그 파괴력은 서태지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상상 이상이었다고 정리해야 옳은 해석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예시가 바로 한국 흑인음악의 아버지라고 자부하는 현진영이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현진영과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현진영의 무대는 완전히 다른 가수의 무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리고 인기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현진영은 이름이나 조금 알린 정도였다면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의 현진영은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는 가수가 됩니다.

당시 최고 수준의 흑인음악 이해도와 열정, 아직도 한국 역대 최고의 댄서로 꼽는 전문가들이 있을 정도로 초월적인 댄스 실력, 남부럽지 않은 가창력, 잘생긴 얼굴까지 완성형 가수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던 것이 현진영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댄서인 구준엽과 강원래를 옆에 끼고 등장했던 데뷔 시절을 생각하면, 흔히 사람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성공조건이라고 말하는 거의 모든 것을 현진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진영이 초절정 인기가수가 된 것은 뛰어난 실력과 성공조건을 갖춘 데뷔초부터가 아니라 서태지에 엄청난 영향을 받은 무대를 들고 나오면서부터입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소위 탑골 GD라고 불리면서 놀라울 정도로 시대를 앞섰다고 칭송을 받고 있는 양준일도 서태지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엄청난 것은 현진영과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직접 흑인음악을 듣고 한국에 들고 나온 양준일이지만 서태지 이전은 미래적인 모습보다는 과거의 가수들과 비슷한 색깔의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반면 서태지 이후는 동일한 양준일임에도 무대의 색깔과 임팩트가 완전히 다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이후로는 한국 가요계에 완전한 단절, 단층이 생겼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비슷한 위치인 플리퍼즈 기타와 그들의 영향력으로 J-POP 시장이 크게 변화한 것과 비교하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끼친 이 한 장의 앨범과 무대가 K-POP 시장을 재편했다는 것은 해가 지나갈수록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90년대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 가요 앨범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90년대 가장 중요한 한국 가요 앨범

2집 Seotaiji and BoysⅡ 1993년 6월 21일

하여가, 우리들만의 추억, 너에게

 

엄청난 성공을 거둔 1집 활동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방송가의 관행을 깨고 돌연 잠적을 했습니다.

2집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기였지만 당시엔 활동종료 - 휴식 및 다음 음반 제작 - 컴백의 패턴이 생소한 것이어서 해체설, 사망설 등 다양한 루머가 돌았고 활동중지가 오히려 대중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집 컴백 무대를 당시 제일 잘나가던 예능 프로였던 특종! TV 연예에서 했습니다.

컴백 몇 주 전부터 광고를 엄청나게 했고, 예능 정보 프로에서도 계속 떡밥을 뿌렸으니, 당시 청소년들은 진짜 어떤 노래를 들고 나올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발매 당일 동네 레코드점에선 당연스레 매진이었고 큰 레코드점에선 번호표까지 나눠주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당시 기성 언론에서는 마케팅의 천재라는 부정적인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컴백 당시 양현석과 이주노의 레게머리나 너에게 활동 당시 앞머리에 빨간색 브릿지를 넣은 서태지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언론에서도 방송사에서도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결국 그룹은 '너에게' 활동 도중 방송정지크리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음반은 잘 팔려나갔고 곡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여가는 처음에는 많이들 이상한 노래라고 갸우뚱했지만, 하여가가 나온 날 학교 앞 노래방은 만실. 노래방에서는 서태지의 곡이 추가될 때마다 입구에다 <서태지 "너에게"> 이런 식으로 노래 들어온 걸 광고했습니다.

Anyhow Song

 

하여가

예예예예예 야야야야야 예이예이예이 야이야

너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

너는 언제까지나 나만의 나의 연인이라

믿어왔던 내 생각은 틀리고 말았어

변해버린 건 필요가 없어

이제는 너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나에겐 항상 시선을 멈췄던

예전의 네 모습과 나를 바라보던 네 미소와

너만의 목소리

모든 게 그리워진거야 지금 나에겐

너를 볼 때마다 내겐

가슴이 떨리는 그 느낌이 있었지

난 그냥 네게 나를 던진거야

예이예이예이 예이예

나 홀로 있을 때조차

너를 기다린다는 설렘에

언제나 기쁘게 마음을 가졌던 거야

예이예이예이 예이예

부풀은 내 맘속엔 항상 네가 있었어

하얀 미소의 너를 가득 안고서

이제는 너를 위해 남겨둔 것이 있어

해맑던 네 미소가 담긴 사진을

난 그냥 이대로 뒤돌아 가는가

넌 그냥 이대로 날 잊어 버리나

난 그냥 이대로 뒤돌아 가는가

널 그냥 이대로 보내긴 내 가슴이 너무나

난 그냥 이대로

날 잊어 버리나

난 그냥 이대로

널 그냥 이대로 보내긴 내 가슴이 너무나

(Did you enjoy that?)

예예예예예 야야야야야 예이예이예이 야이야

너에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지

그 전때처럼 또 바로 그 때처럼 말이야

정성이 가득히 있었지

언제나 나를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었지

이제는 전화를 네게 거는 것 마저

난 이제 모두가 두려워졌어

너는 아닌척 하고는 있지만

너의 목소리가 너무도 차갑지

난 이제 알수가 있어

너도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만을

너의 진실을 숨기지 마

넌 왜 그리 모르지

너를 볼때마다 내겐

가슴이 떨리는 그 느낌이 있었지

난 그냥 네게 나를 던진거야

예이예이예이 예이예

나 홀로 있을 때조차

너를 기다린다는 설레임에

언제나 기쁘게 마음을 가졌던 거야

예이예이예이 예이예

부풀은 내 맘속엔 항상 네가 있었어

하얀 미소의 너를 가득 안고서

이제는 너를 위해 남겨둔 것이 있어

해맑던 네 미소가 담긴 사진을

난 그냥 이대로 뒤돌아 가는가

넌 그냥 이대로 날 잊어 버리나

난 그냥 이대로 뒤돌아 가는가

널 그냥 이대로 보내긴 내 가슴이 너무나

난 그냥 이대로

날 잊어버리나

난 그냥 이대로

널 그냥 이대로 보내긴 내 가슴이 너무나

이렇게 떠나가 버릴

너를 보려한 것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다려

네가 다시 돌아올 날까지

이 곳에서

Our Own Memories

 

우리들만의 추억

한결같은 너희들의 정성이

우리에겐 너무 커다란 힘이 되었지

편지 속의 수많았던 사연들

예쁜 마음 모두가 느낄 수가 있었어

Devastating TAIJI in the place to be

with JU-NO and HYUN-SUK right beside me

Creating the sound to the fullest effect

pumping it hard to gain the respect

Art to the truth and truth to the art

Coming to you straight from the heart

We're rocking the mike as never before

So to all the freaks in the house

move to the dance floor

소리쳐 주던 예쁘게 웃었던

아름다운 너희들의 모습이 좋았어

함께 기뻐하고 모두 다 같이 웃고

서로를 걱정했던 우리들만의 추억들

우리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있어 주질 않았어

다만 우리가 견딜 수 있던 건

너희들의 크나큰 사랑이었어

Dance to music and move

move to the sound and groove,

to the soft MC's I'm a lyrical poet

Listen to my rhyms and you'll surely know it

a hard hiphopper there is none higher

Sucka a MC's they call me sire

T to the A to the I to the J to the I

Why……

CAUSE WE WANT YOU TO FUNK

소리쳐 주던 예쁘게 웃었던

아름다운 너희들의 모습이 좋았어

함께 기뻐하고 모두 다 같이 웃고

서로를 걱정했던 우리들만의 추억들

T is for the TALENT that I possess

A is for attention I get from the rest

I is for my intellect, style and my grace

J is for the joy I bring to my race

I is for identity visions I see

We'll rock you 'till the 21century

So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in this year of '93 We're taking it all

소리쳐 주던 예쁘게 웃었던

아름다운 너희들의 모습이 좋았어

함께 기뻐하고 모두 다 같이 울고

서로를 걱정했던 우리들만의 추억들

우린 약하지 않아 어린애가 아니야

마음을 서로 합하면 뭐든 해낼 수 있어

난 더 잘하겠어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 역시 영원토록 너희들을 사랑할 거야

To You

 

너에게

음..니가..아무리 지금 날 좋아한다 그래도..

그건...지금뿐인 지도 몰라

왜냐하면...어 그건 말야...

너의 말들을 웃어넘기는

나의 마음을 너는 모르겠지

너의 모든 걸 좋아하지만

지금 나에겐 두려움이 앞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너를 가로막고는 있지만

날 보고 웃어주는 네가 (그냥 고마울 뿐이야)

너는 아직 순수한 마음이 너무 예쁘게 남았어

하지만 나는 왜 그런지 모두가 어려운걸

(야이야이야이 never more!)

세상은 분명히 변하겠지

우리의 생각들도 달라지겠지

생각해 봐 (생각해 봐) 어려운 일뿐이지

(워우 야이야이야이 never more!)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을

때로는 외면하고 얼굴을 돌리는 걸

넌 느끼니 (넌 느끼니)

너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너를 만난 후 언젠가부터

나의 맘속엔 근심이 생겼지

네가 좋아진 그다음부턴

널 생각하면 깊은 한숨뿐만

사랑스런 너의 눈을 보면 내 맘은 편안해지고

네 손을 잡고 있을 때면 (난 이런 꿈을 꾸기도 했어)

나의 뺨에 니가 키스할 땐 온 세상이 내 것 같아

이대로 너를 안고 싶어 하지만 세상에는

(야이야이야이 never more!)

아직도 너무 많은 일들이 네 앞에 버티고 있잖아

생각해 봐 (생각해 봐) 어려운 일뿐이지

(워우 야이야이야이 never more!)

네가 접하게 되는 새로운 생활들과

모두가 너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는 걸

알 수 있니 (알 수 있니)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조그마한 너의 마음 다치게 하긴 싫어

이러는 것뿐이지

어른들은 항상 내게 말하지

넌 아직도 (넌 아직도) 모르고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야야야야야 야야야야야)

네 순수한 마음 난 변치 않길 바래

2집 《Seotaiji and BoysⅡ》

하여가, 우리들만의 추억, 너에게

3집 Seotaiji and BoysⅢ 1994년 8월 10일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1994년 8월 10일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번째 앨범입니다.

대표곡은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입니다.

록 음악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앨범이며 동시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 앨범으로 서태지 팬들 사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중 최고의 음악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수많은 악재들로 인해 앨범 판매고가 크게 떨어졌다는 게 150만장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나 록 음악의 색깔이 강한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스래쉬 메탈을 주축으로 하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앨범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 전 세계 록의 흐름을 주도하던 얼터너티브 록이었습니다.

록 매니아들 사이에선 기존의 록 음악과 완전히 다른 별개의 음악으로 불렸던 만큼 골수 정통록/헤비메탈 키드인 서태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텐데 이 앨범에선 꽤 높은 수준의 흡수력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발해를 꿈꾸며>의 전개부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타일의 펑키한 기타 연주가 나타나고 후렴부에는 U2의 디 에지를 연상시키는 쌩딜레이톤이 나타납니다.

두 밴드의 음악 스타일은 꽤 다르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기타 연주의 스타일들이 이 곡엔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록 성향이 강한 앨범

전세계 록의 흐름 주도 얼터너티브 록

타이틀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주제인 <발해를 꿈꾸며>였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이 곡을 듣고 서태지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발해를 꿈꾸며>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요즘은 대중가요가 교과서에 실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 발해를 꿈꾸며가 처음 실렸을 때는 흔치 않은 일이라 기사화 되며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실 이데아>로 입시 제도를 비판했습니다.

이전까지 서태지가 청소년, 청년층을 대변한 가치는 자유와 도전 같은 추상적 내용이었다면 교실 이데아에선 교육이라는 구체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중가요라고 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 자체는 엄연히 불려지고 있었지만, 포크송 위주였기 때문에 이미 당대 청소년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당대의 인기 장르와 결합하는 식으로 불렀고, 서태지는 단순한 10대들의 우상을 넘어서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게 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발매되었던 당시의 시대배경을 보자면 사회가 문민화, 자유화되는 것과는 상관없이1986년부터 교복부활이 시작되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할 시점에는 교복 착용이 완전히 재정착되었고, 청소년 일탈을 막는다는 명목하에서 학생 두발단속도 염색이나 장발, 파마만 아니라면 어느정도 풀어주던 1980년대에 비해 크게 강화되어, 심하면 1970년대식으로 빡빡머리와 단발을 강제 하는 학교들도 종종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체벌남용과 촌지, 0교시, 야간자율학습은 여전히 횡행하는 등 당대의 청소년들은 사회전반의 자유화와 문민화의 흐름에서 한창 소외되었습니다.

사실 입시위주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 혹사 문제는 이미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을 받아왔을 정도로 유서깊었기 때문에 교육문제 비판 자체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거기에 더해서 일선학교에서 대학을 보내야된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자유와 개성을 무조건 억압하는 세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데는 위 두 곡이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소재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곡도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3집 컨셉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나름 충격을 안겼습니다.

아마 내 맘이야에 나오는 가사 내용을 실제로 써먹은 듯 합니다.

이후 치마 콘셉트는 조금 순화되어 삼국시대 복장 비슷한 걸로 바뀌었는데 치마 콘셉트는 발해 왕자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당시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원래 전공이 한국 전통 의상이었기 때문에 바지 위에 덧입은 치마가 금관조복을 연상시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생활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다.

문화대통령이 되다

서태지 안티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크게 음악적 안티와 사회/문화적 안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음악적 안티는 이 앨범이 락으로 회귀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시나위의 베이스 주자였던 서태지는 원래부터 본류라 할 수 있는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에겐 전향자 취급받고 있었고, 3집의 행보는 오히려 자존심 센 락매니아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특히 <교실 이데아>에 협력하고 라이브에서는 아예 특별게스트로 참가한 크래쉬 같은 경우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나중에 인터뷰에서 보컬 안흥찬이 해명한 적도 있을 정도. 이 때가 PC 통신의 확산기라고 할 만한 시기였는데 음악 게시판 등지에서 많은 논쟁이 오갔었습니다.

음악적 안티의 등장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 전형자 배신자 취급

사회/문화적 안티는 3집의 사회비판 메시지에 반발한 기성세대에서 등장했습니다.

1집, 2집에서도 대중문화의 주축이 10대로 넘어가는 현상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은 있었다지만 음악 산업 분야에 한정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서태지가 3집에서 보여준 내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세대간 담론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언론을 중심으로 '서태지 죽이기'로 통칭되는 공격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교실이데아 루머 문단에서 소개할 '피가 모자라' 사건 때문에 개신교계에서도 안티가 발생했고 기존 팬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대 교육계 입장에서는 교복부활이 막 완료되었고, 청소년 탈선방지를 명목으로 두발단속도 강화해놓은지 몇년이 채 안되던 시기였는데 톱스타가 이러한 흐름을 뒤엎으려고 하니까 당황해했고, 당대의 40대 이상 보수적인 기성세대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트로트가 한물간 음악 취급받기 시작하고, 힙합과 랩이 주류가 되는 등 음악시장의 유행이 자기네들 취향과 맞지 않게 흘러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에 대놓고 민중가요적인 가사를 넣은 노래까지 내놓자 여기에 발작한면이 있었습니다.

사회 문화적 안티의 등장

기성세대 언론 중심 서태지 죽이기

'피가 모자라'사건 개신교 안티

교복부활 교육계

 
 

발해를 꿈꾸며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한 민족의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 걸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전 인류가 살고 죽고

처절한 그날을 잊었던 건 아니었겠지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 줘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고 우리와 나갈 길을 찾아요

더 행복할 미래가 있어

우리에겐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이 마음 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인데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 줘

갈 수 없는 길에 뿌려진 천만 인의 눈물이 있어

워! 나에겐 왜 갈 수도 올 수도 없는가[5]

저 하늘로

자유롭게

저 새들과 함께

날고 싶어

우리들이 항상 바라는 것

서로가 웃고 돕고 사는 것

이젠 함께 하나를 보며 나가요

Classroom Idea

 

교실 이데아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석 모두를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메일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 센터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 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 수 있어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메일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메일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3집 《Seotaiji and BoysⅢ》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문화대통령

안티의 등장

4집 《Seotaiji and BoysⅣ》 1995년 10월 5일

Come Back Home, 시대유감, 필승,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1995년 10월 5일 발표작이고, 서태지와 아이들 명의로는 4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며, 대표곡은 Come Back Home, 시대유감, 필승. 비주류 음악이지만 통산 판매랑 200만 장을 자랑했습니다.

갱스터 랩 스타일 Come Back Home

컴백홈의 경우 가출한 청소년들이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몇몇 노래의 가사가 사전 심의에서 걸렸으며, 이에 '시대유감'은 아예 가사를 들어낸 뒤 MR 버전으로 실었고 은퇴 이후에야 보컬이 실린 원곡이 싱글로 발매됐습니다.

발매 초판 버전에는 필승 등 가사 심의에 걸렸던 노래들이 수정 없이 원곡으로 들어있었습니다.

'시대유감'의 경우 초판에는 가사만 삭제된 채 음원만 수록되어 있었으나 사전 심의가 폐지된 1996년 이후로 재발매된 싱글 음반과 4집에는 가사가 삽입된 원 가사의 곡 그대로 수록했습니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거세던 사전 심의에 대한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뒤로 사전 심의제도는 사라졌습니다.

원래 정태춘, 박은옥 등이 이 문제를 제기해서 슬슬 공론화되는 과정이었는데 서태지가 제대로 기름을 끼얹었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측에서 낼름 떡밥을 물고 전국적으로 공론화되었습니다

사전심의 제도 폐지

1996년 6월 7일

시대유감 싱글 앨범

1996년 7월 10일 무삭제 원곡

 

Come Back Home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가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가슴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내겐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그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 끝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다시 부모의 제압은 시작됐지

네겐 사랑이 전혀 없는 것

내 힘겨운 눈물이 말라 버렸지

무모한 거품은 날리고 흠

주위를 둘러봐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이젠 그만 됐어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Come back home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In the place to be

One two three

Come on

In the place to be

Yes yes y'all

In the place to be

Yes yes y'all yes y'all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만들 것 같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 았어

날 사랑했다는 것을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You must come back home)

난 지금 무엇을

(You must come back home)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You must come back home)

난 지금 어디로

(You must come back home)

쉬지 않고 흘러가는가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서태지와 아이들(Seotaiji and Boys) - 필승(Must Triumph) M/V (4k)

 

필승(必勝)

난 버림받았어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보기 좋게 차인 것 같아

빌어먹을 내 가슴속엔

아직도 네가 살아 있어

정말 난 바보였어 몰랐었어

나를 사랑한다 생각했어

내 마음도 너를 사랑했기에

내가 가진 전부를 줘 버렸어

넌 왔다 갔어 이런 날벼락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

그리고 자꾸 깊은 곳으로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내 인생 내 길을

망쳐 버린 네 모습을 없애 놓을 거야

Wo-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잘못 봤어 손해를 봤어

잘못 봤어 손해를 봤어[11]

그렇게 사랑스럽던 네가

나에겐 눈물을 보일 기회도 주지 않았었지

아무 일도 난

(잡히지 않고 왜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나)

허우적대고 있었지

내 생활은 칙칙하게 됐어

앞뒤가 맞지가 않잖아

나는 이를 악물고 오히려 잘 됐어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내 인생 내 길을

망쳐 버린 네 모습을 없애 놓을 거야

아무도 모르게

아아 아무도 모르게

설레였던 나의 마음을

아름답던 기억들을 없애 놓을 거야

밤새우며 그리워한 많은 날들을

미치도록 사랑스런 너의 모습을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uh

시대유감(時代遺憾) (2024 Remastered Ver.) - regret of the times 서태지와 아이들(Seotaiji And Boys)

 

시대유감(時代遺憾)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 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 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 날이 바로 오늘 올 것만 같아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 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부러져 버린 너의 그런 날개로

너는 얼마나 날아갈 수 있다 생각하나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너의 심장은 태워 버리고

너의 그 날카로운 발톱들은 감추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모두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 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바로 오늘이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SeoTaiji & boys - 4th : 1996, when they ruled the Earth(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천구백구육 아직도 수많은 넋이 나가있고

모두가 돈을 만들기 위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걸 나는 볼 수가 있었지

넌 항상 그 머릿속 구석엔

그대를 떠올리면서 복종을 다짐해

지금 우리는 누굴 위해 사는가

그에게 팔과 다리와 심장을 잡힌 채

넌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언제나 항상 우리가 볼 수 있던

그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 가려져

네 눈을 멀게 했어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 세상

그는 모든 범죄와 살인을 만들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을 죽이고 있어

전쟁 마약 살인 테러 그 모든 것을 기획했어

넌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끌려다녀야만 하는데

여기저기서 찔러 넣는 까맣게 썩어버린 돈들

돈으로 명예를 사고 친구를 샀던

썩어버린 인간들

넌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 당해버린

쓰러져 가버리는

정복 당해버린

쓰러져 가버리는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정복 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 가버리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4집 《Seotaiji and BoysⅣ》

Come Back Home, 시대유감, 필승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사전 심의 제도 폐지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소속사를 통해서 1996년 1월 23일 은퇴 의사를 밝혔고, 같은 달 31일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적으로 그룹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1996년 1월 31일 은퇴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유림회관

그룹 해체 공식 발표

이들은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보여 주었다"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 그대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지상파 3사 저녁 메인뉴스의 첫번째 소식을 전부 차지하였으며, 스포츠신문 1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한 건 물론이고 일간지의 1면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로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깜놀하게 되었는데, 이 반응이 정말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띄우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통령이 사임을 했다는 반응과 거의 비슷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10~20대 정도의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큰 충격에 빠졌으며 "서태지가 은퇴한다니? 이젠 한국의 대중가요계가 텅 비었다" 같은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학교에선 서태지 은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고 심지어 골수 여학생 팬들은 해체를 반대한다면서 매일 서태지의 소속사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증언을 빌리자면, 나이어린 초등학생들 고학년 사이에서도 "도대체 왜 해체하는데?"라는 말밖에 안 나왔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인 30대, 40대, 50대에게도 이들의 은퇴 소식은 엄청난 화제였습니다.

미공개 영상을 보면 기자회견을 하고 떠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는 기자/카메라맨들과 오빠들 따라가려고 울부짖는 팬들이 뒤엉켜 아비규환. 여담으로 서태지는 "아직도 이때를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은퇴설이 나돌던 기자회견 며칠 전에도 은퇴하면 죽겠다는 등 극단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팬들의 모임도 있었을 정도 였습니.

신문 등지에서는 불안정한 자녀들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게재되었습니다.

해체 기자회견을 가진 당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미국으로 출국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김포공항에 취재진들이 죽치고 기다렸지만 기상악화로 인해 하루 늦게 출국했습니다.

김포공항에는 수많은 팬들이 마지막 모습을 보러 출국게이트에서 기다렸지만 혼란이 걱정되었던 건지 잠실 선착장에서 헬기를 따로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이 헬기에 타면서 팬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영상은 이후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굿바이 비디오 테이프에 기자회견 영상과 함께 굿바이 뮤직비디오에 포함되어 공개되었습니다.

이상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