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사건사고

일장기 말소 사건

일장기 말소 사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트인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어 있던 일장기를 덧칠하여 지워 버리고 신문에 발간하였습니다.

193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의 지방판 조간 2면 및 조선중앙일보 4면, 다시 동아일보의 8월 25일자 2면에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우승 사실을 보도하면서 일방기를 삭제한 사건입니다.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의 발간을 정지시키는 정간 조치를 단행하고 관계자들을 체포하여 고문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참여한 기자들은 항일 민족 정신을 고취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임명 및 추서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독립룬동에 해당합니다.

 
 

일장기가 지워진 손기정 선수의 사진, 1936년 8월 13일자 조선중앙일보(좌) 4면 기사와 동아일보(우)의 지방판 조간 2면 기사 출처 : 위키백과

일장기 말소 사건 개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본 선수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던 마라톤 선수 손기정은 동료 선수인 남승룡과 함께 '올림픽의 꽃'으로 불렸던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여 손기정 선구가 올림픽 신기록을 달성하며 1위를 남승룡 선수가 그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여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상대에서는 한국 이름인 손기정, 남승룡이라는 이름이 아닌 일본 이름 '손키테이, 난소류'로 호명되었고, 국기도 태극기가 아닌 일본국기인 일장기가 게양되었으며 국가도 애국가가 아닌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대신 연주되었습니다.

시상식 때 손기정 선수는 1위 기념으로 받은 월계수 묘목을 일부러 가슴에 끌어안아서 일장기를 최대한 가렸고, 남승룡 선수도 최대한 바지를 끌어올려 일장기를 가리려 시도했습니다. 남승룡 선수는 나중에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보다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게 더 부러웠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이 소식은 조선에도 전해지게 됩니다.

동아일보는 8월 13일자 동아일보의 지방판 조간 2면에, 8월 25일 동아일보 2면에 손기정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송진우를 비롯하여 이 사건을 직접 주도했다는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인 이길용, 사회부장이자 주필이었던 현진건, 사진부장 신낙균, 백운선, 서영호를 비롯해 이길용 기자의 지시에 따라 일장기 사진의 빨간 부분을 하얀색으로 덧칠해서 지웠던 사진부 화가 이상범 등을 체포, 조사하여 40일간의 구류 처분을 내리게 했습니다.

당시 조선총동부는 이 사건을 법률로 다스리려 했지만 처벌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처벌을 하지 못하고, 대신 모진 고문을 행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총독부에 의해 송진우는 동아일보 사장식을 사임하게 되었으며, 주필 김준영, 편집국장 설의식 등도 사임하였고, 이길용, 현진건, 신낙균, 서영호, 최승만도 언론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썼습니다.

이후 동아일보는 조선총동부에 의해 8월 29일자부터 무기 정간 처분을 당하면서 1920년 4월 창간된 이래로 네 번째로 무기 정간을 당하게 됩니다. 자매지 신동아는 폐간되었습니다.

조선중앙일보는 8월 13일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고, 9월 4일에 자진하여 '근신의 뜻을 표하고 당국의 처분이 있을 때까지 휴간한다'의 사고를 게재함과 동시에 휴간에 들어갔지만 신문사 내부 분열로 결국 신문을 폐간하였습니다.

동아일보가 먼저 조선중앙일보가 먼저다(?)

한편, 한겨례, 민족문제연구소 등 진보 성향 단체에서는 일장기 말소사건은 조선중앙일보가 원조이며, 동아일보는 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였으나, 193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의 지방판 기사가 발굴되면서 조선중앙일보의 원조설은 파기되었습니다.

당시 관행으로 지방판은 그 전날 발행되었으므로, 동아일보의 지방판 기사 8월 13일자는 8월 12일에 발행된 것으로 조선중앙일보의 그것보다 하루 빠르게 됩니다.

이상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