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여명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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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은 2011년 1월15일 아브디 리스케 샤크가 이끄는 소말리아 해적 일파에 의해 피랍된 대한민국의 삼호해운 소속 선박 삼호 주얼리호(1만 톤급)를 18일 대한민국 해군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통칭 총해부대)가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 해상에서 구출한 작전입니다.
아덴만, 삼호 주얼리호 사진,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
소말리아 해적 피랍
대한민국 삼호해운 소속 삼호 주얼리호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 구출 작전
2011년 1월 16일 ~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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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의 전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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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대한민국의 삼호해운 소속 선박 삼호 주얼리호가 해적들에게 피랍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기 두 달 전 이미 한국 선박이 납치된 적이 있었고 그때 평균 협상금의 두배인 100억원의 협상금이 지급된 적이 이었습니다.
두달만에 이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자 이번에도 협상금을 지급할 경우, 한국 선박들이 해적들의 주요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을 투입해 인질 구출 작전을 시행하기로 결정하고, 현장에 급파합니다.
대한민국 삼호해운 소속 삼호 주얼리호
소말리아 해적 피랍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 투입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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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한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삼호 주얼리호와 인질들이 청해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소말리아에 도착해버린다면 구출작전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호 주얼리호의 선장 석해균 선장은 해적들의 수와 무기소지 등에 대한 정보를 청해부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나 심심해서 게임 좀 해야겠다'고 하며 컴퓨터에 접근해 바둑 게임을 했습니다.
뭔가 싶어 쳐다보던 해적들은 지루함을 느끼고 관심을 표현했고, 그 틈을 타 몰래 해적들의 정보를 넘겼고, 동시에 청해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좀 끌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여러 차례 기지를 발휘해 작전 시간을 버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석 선장은 최초에는 기관실에 이상이 있다며 해적을 속이고 배를 멈췄으며 가짜로 수리했다고 한 후에는 기관에 이상이 있어 속도를 못 낸다며 5노트의 속도로 시간을 끌었고 자이로스크프를 조작하여 지그재그 주행했습니다.
또 선박 속도를 늦추려고 해적들 몰래 "엔진오일에 물을 타라."고 지시했고 선장 석해균에게 지시받은 기관장 정만기는 해적의 감시를 피해 물을 탔습니다.
선장 석해균 측의 말로는 물을 타라고 지시하였으나 선원들이 겁에 질려 시도하기까지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속도를 레드 존에 놓는 식으로 엔진 고장을 가장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선박은 정상 운항이 어려워졌습니다. 엔진오일에 물이 들어간 탓에 삼호주얼리호는 자주 멈추는가 하면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석해균 선장
청해부대 도착 전까지
기지 발휘해 삼호 주얼리호 속도 늦춤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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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구출 작전은 2011년 1월 18일 20시 9분(KST)에 해적들이 소말리아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석해균 선장의 기지 덕에 삼호주얼리호의 정상 운행이 불가능해지자 해적들은 근처를 지나는 몽골 상선을 빼앗으려고 4명이 해적선을 타고 삼호 주얼리호를 떠납니다.
최영함이 해적들을 뒤쫓는 도중 해적들이 몽골 선박을 추가로 피랍하기 위해 자선(子船)을 내리는것을 포착하고, 이 때 해적들이 분열된 틈을 타 작전을 시행했습니다.
링크스 헬기로 자선에 위협사격을 가한 뒤 관심이 쏠린 사이 청해부대 소속 해군특수전여단 요원들이 고속정으로 삼호 주얼리호에 접근했고 해적과의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 작전으로 적들은 흰기를 들고 항복 하는 척 하다가 바로 AK 소총을 발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특수부대원 3명이 총상과 찰과상 등의 부상을 입고 작전을 중지, 최영함으로 복귀했으며 해적의 자선에서 AK-47 3정과 사다리, 해적 자선(子船)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경고 사격 과정에서 해적 수 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되었습니다.
1차 구출 작전
특수부대원 3명 총상 찰과상 작전중지 복귀
해적 자선과 AK47 정, 사다리 확보
해적 수명 바다에 빠져 실종
2011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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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가 진입하는 시간대가 중요했는데, UDT가 주얼리호에 진입하는 동안은 어둡고, 진입한 후에는 밝은 시간대가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여명에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이 작전이 아덴만 여명 작전이라 불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11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최영함과 대한민국의 해군특수전여단(UDT/SEAL)이 투입되어, 약 5시간의 교전을 거쳐, 해적들을 제압하고 21명의 선원들을 전원 구출했습니다.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인질 중에 사망자는 없었으나, 석해균 선장이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작전 과정 중에 해적이 발사한 총탄에 부상을 입은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응급 처치 후 오만의 제2도시 살랄라에 위치한 술탄카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석 선장은 오만 살랄라 공항에서 29일 11시 40분경(한국시각)경 환자이송 전용기를 통해 출발해 중간 급유 국인 태국 방콕을 거쳐 11시간 만인 22시 30분경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석 선장은 작전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2차 구출 작전, 아덴만 여명 작전
대한민국 최영함과 해군특수전여단(UDT/SEAL)
약 5시간의 교전, 해적 제압, 선원 21명 전원 구출
8명 해적 사살, 5명 생포
석해균 선장 복구 관통상 부상
2011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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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의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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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13명 중 두목과 부두목을 비롯해 8명이 사살되고 5명이 생포 되었습니다.
사살된 해적들의 시신 처리 문제는 오만 주재 소말리아 대사관과 협의가 지연되면서 수장하는 방법도 고려되었다가 오만을 거쳐 소말리아로 인계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해적들의 신원을 파악했으며 생포된 해적의 신원은 다음과 같습니다.(나이는 모두 당시 기준)
마호메드 아라이(Mahomed Arai): 23세. 어부. 해상에서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조달하는 담당이었습니다. 선원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석해균 선장을 쏜 해적으로 유력시되며 인질들을 험하게 다루어서 좋지 않은 진술이 있었습니다. 해적들 증언에도 조타실에서 내려와 총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하니 분명합니다.
압둘라 알리(Ali Abdullah): 21세. 전직 군인. 아라이와 함께 해군의 2차 공격 때 석해균 선장, 김두찬, 정상현, 손재호 등을 인간 방패로 내세웠습니다.
아부카드 애맨 알리(Ali Abukad-Aeman): 21세. 전직 군인. 전직 군인 출신인 2명은 무기류 공급, 총기사용 훈련을 맡았습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7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서는 차라리 가족들도 다 같이 교도소에 데려와서 살고 싶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Abdulahi Husseen Maxamuud): 예명 압둘라 세륨(Serum Abdullah). 21세. 요리사. 해적들과 인질의 식사 담당으로 다른 해적과 달리 선원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친절하게 대해 인질들 쪽에서도 좋은 소리가 나왔으며 유일하게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아울 브랄렛(Brallat Aul): 19세. 버스 운전 기사. 원래는 학생이였으나 중간에 때려치우고 버스 운전 기사를 했습니다. 해적이 된 것은 자신이 몰던 버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수리비를 마련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다. 해군의 1차 기습 때 기관총을 쏴서 해군 특전요원들에게 상해를 입힌 장본인입니다. 유일한 10대에 학생 신분이었고 영어에도 꽤 능통하다고 하는데 어느새 한국어도 배웠는지 "판사님 앞으로 두 번 다시 해적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꼭 귀화하고 싶다고 강하게 읍소했습니다.
해적 5명은 최영함에 감금된 뒤 아랍 에미리트 왕실 전용기 편으로 석해균 선장을 오만의 병원에서 한국으로 후송할 때 같이 압송되었습니다.
잡혀온 해적들은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한국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처벌을 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들은 UN해양법협약 제105조 "공해상에서 해적선을 나포하고 해적을 체포할 수 있으며 해당 국가의 법원에서 형벌을 결정할 수 있다."에 따라서 대한민국으로 데려와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해상에서 외국인 해적을 붙잡아 와서 재판한 것은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법무부의 검토에 따르면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내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경우 해상강도죄로 10년 이상의 무거운 징역을 선고받게 됩니다.
부산지방검찰청은 해상강도살인미수·강도살인미수·해상강도상해·강도상해·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선박 및 해상구조물에 대한 위해행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으며 해적 5인방 중에서 요리사 압둘라 세륨만 모든 혐의를 인정하여 일반재판을 받고 나머지 4명은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하여 배심원들이 참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마호메트 아라이에게 무기징역, 나머지에게는 13년형 및 15년형을 구형했으며 2011년 5월 28일 1심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판결문(2011고합93)
1심 결과에 불복하여 이루어진 2심 및 대법원 판결에서 압둘라 세륨은 속죄를 사유로 징역 12년으로 감형됐지만 나머지는 항소기각되었습니다.
2심 판결문(2011노349) 3심 판결문(2011도12927)
마호메드 아라이: 무기징역 (2031년 이후 가석방 가능)
압둘라 알리: 징역 13년 (2024년 5월 28일 출소)
아부카드 애맨 알리: 징역 13년 (2024년 5월 28일 출소)
압둘라 후세인 마하무드(압둘라 세륨): 징역 15년 → 12년 (2023년 5월 28일 출소)
아울 브랄렛: 징역 15년 (2024년경 가석방 출소)
한편 형사소송법적으로는 체포 과정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일단 대한민국 해군은 사법경찰관도 검사도 아니고 사법경찰관리에 준하는 권한이 법적으로 부여된 사람들도 아닙니다.
형사소송법 213조 1항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 아닌 자가 현행범인을 체포할 때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에게 인도하여여 한다는' 조문이 있는데, 해적들은 이역만리에서 체포되었기 때문에 신병이 인도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 것입니다.
이 문제는 대법원이 대판 2011도12927 판결을 통해 '즉시'는 '정당한 이유없이 인도를 지연하거나 체포를 계속하는 등으로 불필요한 지체를 함이 없이'라는 뜻으로, 체포된 현행범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기한 48시간의 기산점은 '검사 등이 현행범을 인도받은 때'로 보고 해군의 체포와 검사의 기소라는 절차 면에서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던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 여러가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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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 석해균 선장 치료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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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대학병원에서 1차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위중한 상태에 빠졌고 이에 대한민국에서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이국종 교수팀이 현지로 급파되었습니다.
이국종 교수가 직접 서술한 바에 따르면 석해균 선장은 이미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었으므로 한국 의료진이 가더라도 실패의 부담이 매우 컸고 병원 내에서도 이 교수가 오만행을 결정하는 바람에 병원 윗선에서 불같이 화를 쏟아내는 등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국종 교수는 오만에 도착하여 2차 응급수술을 집도했으나 석해균 선장의 용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한국으로 응급 이송하여 근치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문제는 석해균 선장이 생사가 경각에 달린 환자였으므로 일반 여객기나 군용기로는 이송이 불가능하여 전문적 의료장비를 갖춘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에어 앰뷸런스와 정부의 미온적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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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팀의 김지영 코디네이터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독일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으나 한국 정부가 미적미적하면서 결정을 미루는 사이, 이 에어 앰뷸런스는 다른 환자 이송을 위해 떠나버렸습니다.
이 교수 팀이 급히 스위스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 '레가(Rega)'와 접촉하여 비행기를 섭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 회사도 계약금을 바로 입금하든가 아니면 정부 차원의 지급보증을 요구했습니다.
또다시 정부가 미적미적거리자,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위해 더는 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이국종 교수는 어떤 정부 부처도 확답을 주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계약서에 지급보증 서명을 해서 보내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때 에어 앰뷸런스 총 이용대금은 $380,000, 한화 4억 원이 훌쩍 넘는 거액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병원 내에서 눈총을 받던 와중인데 일이 잘못 돌아갔을 경우 이국종 교수가 개인 재산에서 다 물어내고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 되는 것이고, 환자가 사망이라도 하면 단기적으론 여론 때문에 못 하겠지만 장기적으론 병원에서 잘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김지영 코디네이터가 교수님 미쳤냐며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나, 이국종 교수는 기어이 팩스를 다시 받아서 서명을 보냈고, 잠시 뒤 이 사실을 안 김지영 코디네이터는 얘기를 듣다 말고 그냥 방을 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용은 내가 낼 테니 지금 당장!!"의 일화의 전말입니다.
스위스 Rega 사의 봄바디어 챌린저 604 에어 앰뷸런스. 석해균 선장을 국내 이송한 그 기종, 출처 : 나무위키
이때 에어 앰뷸런스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그에 관한 관련 인프라와 인력을 조성 및 육성해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조성된 바 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잠시 논의되다가 사라졌습니다. 2023년이 되어서야 '플라잉닥터스' 소속의 에어 앰뷸런스가 운항을 준비 중입니다.
이국종 교수와 중증외상센터 정책 분야에서 협조하던 당시 민주당 허윤정 전문위원의 중재와 도움으로 청와대가 각 부처 조율에 나서면서 국토교통부가 아주대학교 병원과 가까운 성남공항을 개방하는 등 준비 끝에 마침내 석해균 선장은 한국으로 이송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의 교통통제하에 앰뷸런스로 20여 분만에 아주대학교 병원에 이송된 석선장은 이국종 교수 집도 하에 대수술을 받아 마침내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2011년 2월 3일 오전 10시 의식을 회복한 석해균 선장은 이후 상태가 악화와 호전을 오갔지만 천천히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석해균 선장은 2011년 11월 4일 퇴원하였습니다.
석해균 선장에게 맞은 총알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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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해균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고 결국 그 중 하나는 아군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곳곳에 총알이 날아다니던 상황이었던 만큼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게 대세지만 책임 추궁 차원이 아닌 작전의 평가와 보완 차원에서도 진상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도 대두되었습니다.
석해균 선장 몸에서 나온 탄환 중 하나
아군의 것, 진상조사 결과 유탄으로 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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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석해균 선장을 포함한 선원 가족들은 오히려 UDT/SEAL 대원들에게 감사를 표명했습니다.
과거에 군사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인질 구출 작전에서 인질범들의 공격만이 아니라 교전에 휘말려드는 등 성공적인 작전이라도 인질의 30% 가량은 피해를 입을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근 30여 년간의 인질 구출 작전 대부분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인질의 희생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뿐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린 해적 재판에서 이국종 교수의 증언과 수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결론은 해적들은 직접 사격으로 쏜 게 맞았으며 석 선장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해군의 탄환은 다른 곳에 맞고 튕겨나온 유탄이라 근육층을 뚫지 못하고 가벼운 상처로 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석해균 선장과 선원 가족
UDT/SEAL 대원에게 감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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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해균 선장 치료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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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해균 선장이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약 2억 원 정도의 치료비가 발생했는데 이 중 국민건강보험 측에서 지불한 약 8,800만 원 정도를 제외한 액수를 미지급하였습니다.
치료비를 내야 할 주체는 본래 삼호해운이었지만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결국 파산하면서 치료비를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2015년 2월 아주대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우학원은 치료비를 받기 어렵다고 보고 이를 회계상 손실 처리했습니다.
대우학원의 추호석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정부에서 조치를 해줄 수 없다면 추후 다른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관련 기사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정부가 석 선장을 영웅으로 추켜세울 땐 언제고 정작 치료비 문제는 뒷짐지고 있느냐는 등의 비판이 일었습니다.
6년이 지난 후 정부에서 치료비의 대납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2017년 12월 26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석 선장을 치료한 의료 기관이 받지 못한 치료비를 일반예비비에서 지출하는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대통령이 두 번 바뀌고 나서야 완납한 셈입니다.
석해균 선장 치료비 미지급 8,800만원
치료비 지급 주체 삼호해운 법정관리 파산
2015년 2월 아주대병원 회계 손실 처리
2017년 12월 26일 국무회의 의결 완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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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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